콜롬비아군참전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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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인천광역시 서구 승학로 337(경명공원 내)
관리자 : 인천광역시 서구청
건립일자 : 1975. 9. 24. / 재건립 : 2018. 7. 25.
시설규모 : 가로 2m, 세로 18m, 비높이 10m
부지면적 : 10421㎡

  - 6‧25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한 콜롬비아군 611명(지상군 1개 대대와 함정 1척 파견, 5,000여명 참전)을 추모하기 위하여 1975년 9월 24일 국방부에서 이 비를 건립하였다. 인천시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2018년 7월 25일 인천광역시 서구 연희동 경명공원으로 이전 건립하였다.  
  -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즉시 파병을 결정했고, 콜롬비아는 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에 지원군을 보냈다. 콜롬비아군은 참전을 결정하자마자 미국식 장비로 재무장한 뒤 미국 교관단으로부터 12주간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이와 함께 189명이 탑승한 해군 프리깃함도 한국 해역에 투입할 준비를 하기 위해 진주만에서 미 해군과 합동훈련에 나섰다. 1951년 4월 프리깃함 파딜라호가 한국을 향해 출항한데 이어 1천여 명의 병력으로 편성된 콜롬비아 1보병 대대도 5월 21일 미국 수송선을 타고 콜롬비아를 떠났다. 이들은 1951년 6월 15일 이승만 대통령과 한미 고위 장성, 한국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부산항에 입항했다. 육군으로는 유엔군 가운데 마지막으로 한국에 도착한 것이다. 콜롬비아는 교대병력을 포함해 연인원 5천 100여명의 병력을 모두 4차례에 걸쳐 한국에 보냈다. 이들은 김화 400고지 전투, 연천 180 고지 전투, 골모고지 전투 등에서 격전을 치렀다. 콜롬비아군은 군율이 엄하고 용맹하기로 소문났으며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는 신조를 지켜 전투마다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참전 기간 중 전사 143명, 실종 69명, 포로 30명과 부상자 등의 고귀한 희생이 뒤따랐다. 휴전된 1953년부터 1954년까지는 유엔군 방어작전지역 경계임무를 수행하였다.  

< 출처 :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