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학도의용군참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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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수봉안길 84(수봉공원 내)
관리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
건립일자 : 1979. 10 .1.
시설규모 : 기단높이 0.45m, 비높이 8.18m
부지면적 : 1200㎡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남침으로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자 일본에 있던 재일교포의 자녀 및 유학생 1,000여명은 주일 대표부에 조국 수호를 위하여 참전하겠다는 뜻을 전하였지만, 주일대표부와 미국 극동사령부는 이들은 병역의무가 없어 참전할 수 없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조국을 위해 꼭 참전하겠다는 탄원서를 내는 등 적극적인 교섭 끝에 642명이 미8군에 편입되어 참전할 수 있었다. 이들은 불과 1~2주간의 짧은 훈련을 마치고, 1950년 9월 중신 176명이 투입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한국에 들어왔다. 재일학도의용군은 미국과 국군부대에 수십 명 단위로 흩어져 인천상륙작전, 평양입성, 압록강 해산진 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에 참여했다. 이들 642명 중 52명은 전사했고 83명은 행방불명 처리되었으며, 265명은 일본에 귀국하였으나 242명은 일본이 무단출국자로 규정해 입국을 거부하여 조국에 남았다. 
  - 1959년 6월 28일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52명의 유골을 안치할 충혼탑과 납골탑이 일본 동경에 건립되었고, 1956년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에서 조국의 땅인 월미도에 기념비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무산되었다. 1976년에 와서 서울 현충원에 재일학도의용군 위령비가 건립되었는데, 재일교표들의 모금에 의한 것이었다. 이후 1979년 10월 1일 바다를 건너 달려온 재일학도들의 장한 뜻을 영원히 기리고 후세 젊은이들에게 조국애에 대한 한 표본으로 남기기 위해 수봉공원에 4백여 평의 대지를 마련하여 높이 8m의 석재 조형물과 청동군상으로 된 ‘재일학도의용군 참전비’를 건립하였다. 제막식에는 최규하 국무총리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고, 참전비 문구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휘호가 새겨졌다. 1982년 11월 1일 참전비 앞에 다시 재일학도의용군 명비와 연혁비가 세워져 제막식이 열렸다. 현재 매년 9월 국내외에 거주하는 동지회 회원들이 수봉공원 이 기념비 앞에서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 출처 :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 서비스 홈페이지 >